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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 마파람이 무슨 바람일까?

Young 쌤 2026. 5. 22. 00:12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음식을 아주 빨리 먹어 치울 때 쓰는 속담이에요.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마파람'이 대체 무슨 바람인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이 속담을 들을 때마다 궁금했어요. "마파람? 그게 바람 이름인가? 무슨 뜻이지?" 알고 보니 '마파람'에는 옛사람들이 바람을 부르던 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어요.

우리말 발견 ④
마파람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남풍)

마파람은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에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남풍'으로 풀이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은, 따뜻한 남풍이 불어올 때 게가 눈을 쏙 감추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에요.

'마'가 남쪽이라고요?

여기서 진짜 재미있는 부분이 나와요. '마파람'의 '마'가 바로 남쪽을 뜻하는 우리말이에요.

우리는 흔히 동서남북이라는 한자어를 쓰지만, 사실 한국어에는 방위를 가리키는 고유어가 따로 있었어요. 그 고유어가 바람 이름 속에 그대로 살아 있는 거예요.

우리말 방위 이름
동쪽
서쪽
남쪽
북쪽

동쪽은 '새', 서쪽은 '한', 남쪽은 '마', 북쪽은 '높'. 이 방위 이름이 바람 이름에 그대로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한국어의 바람은 방향이 아니라 고유한 이름으로 불려요.

그래서 바람마다 이름이 있어요

'마'가 남쪽이라는 걸 알고 나면, 다른 바람 이름도 줄줄이 보이기 시작해요.

샛바람 — 동풍 ('새'=동쪽)

하늬바람 — 서풍 ('하늬'=서쪽)

마파람 — 남풍 ('마'=남쪽)

된바람 — 북풍 ('높/된'=북쪽)

'샛바람'의 '새'는 '새벽', '샛별'의 '새'와 같은 뿌리예요. 모두 동쪽이 밝아온다는 뜻을 품고 있어요. 동쪽에서 부는 바람이라 '샛바람'인 거예요.

이렇게 한국어는 바람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어요. 단순히 '남풍, 북풍'이라고 부르는 대신, 농사짓고 바다에 나가던 사람들이 매일 마주하던 바람에 정겨운 우리말 이름을 준 거예요.

바람에 담긴 삶의 지혜

바람 이름이 들어간 속담을 보면, 옛사람들이 바람을 얼마나 가까이 두고 살았는지 느껴져요.

"마파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
— 따뜻한 남풍이 불면 곡식이 놀랄 만큼 빨리 자란다는 뜻

남쪽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곡식이 쑥쑥 자라요. 그렇게 빨리 자라는 모습을 "혀를 빼물고 자란다"고 표현한 거예요. 마치 숨이 차도록 힘껏 내달리듯, 곡식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자라는 기세를 그린 말이에요. 바람 하나에도 계절과 농사와 살림이 다 담겨 있어요.

그런데 왜 하필 '게 눈'일까요?

다시 처음 속담으로 돌아가 볼게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빠르다는 걸 표현하려면 "눈 깜짝할 새"라고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게의 눈을 가져왔을까요?

비밀은 게의 눈 생김새에 있어요. 게의 눈은 가느다란 자루 끝에 동그란 눈알이 달려 있어요. 위험을 느끼면 이 눈자루를 순식간에 몸 안으로 쏙 접어 넣는데, 그 속도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예요.

재미있는 건, 이 눈자루 모양이 숟가락을 똑 닮았다는 거예요. 동그란 눈알에 가느다란 자루. 게가 눈을 접었다 펴는 모습이, 마치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는 동작처럼 보였던 거죠. 그래서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모습'으로 이어진 거예요.

그런데 왜 남풍이었을까요?

된바람도 있고 샛바람도 있는데, 왜 하필 마파람일까요? 여기엔 게의 습성이 얽혀 있다고 해요.

남풍은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라 비를 몰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바닷가에서는 "마파람이 불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런데 예민한 게들은 마파람이 불어 비가 올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눈을 감추고 갯벌 속으로 숨어 버렸대요. 비바람과 짝이 되는 바람이 마파람이었으니, 게의 그 재빠른 반응을 가장 잘 끌어내는 바람으로 속담에 들어간 거예요.

춘향전에도 나오는 속담

이 속담은 생각보다 오래됐어요. 판소리 〈춘향전〉에도 등장하거든요.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거지 행색으로 월매를 찾아갔을 때예요. 월매가 마지못해 내준 밥 한 그릇을, 사흘은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 치우자 월매가 핀잔을 줘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고요. 수백 년 전에도 누군가 밥을 정신없이 먹는 모습을 보며 이 말을 썼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정겹지 않으세요?

지금 부는 이 바람은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요즘, 남쪽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요. 바로 마파람의 계절이에요.

다음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제 그 안에 담긴 남쪽 바람과 우리말 방위 이름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무심코 쓰던 속담 하나가 조금 다르게 들릴 거예요. 바람의 방향까지 이름으로 부르던 사람들의 마음이, 그 한마디에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 여러분 동네에는 지금 어떤 바람이 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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